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메소포타미아 문명 (문단 편집) === 통일 제국들의 등장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sargon-of-akkad-2.jpg|width=400]]}}} || || '''{{{#E4C77E [[사르곤|{{{#E4C77E 사르곤}}}]] 대왕의 두상}}}''' || [[아카드]] 제국은 '''세계 최초의 제국'''이었다.[* 정확히는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타 왕국들을 정복하여 지배하는 제국의 형태를 갖춘 국가라고 할 수 있는데, 일부 학계에선 아카드 제국을 정확히 인류가 세운 첫 제국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에 대해서 약간의 논쟁이 있다. 이전에 수메르 문명에서도 인근의 도시들을 공격해서 병합한 경우는 몇번 있어왔기 때문. 그러나 메소포타미아 전역을 처음으로 통일하고 다른 지역까지 진출한 국가는 아카드 제국이며, 대부분의 경우 아카드 제국을 세계 최초의 제국으로 본다.] 기원전 2334년 즉위한 [[사르곤]] 대왕 덕에 [[페르시아 만]]부터 [[지중해]]까지 메소포타미아 전역을 아우르는 제국으로 성장했고 보통 기원전 2334년부터 기원전 2154년까지를 아카드 시기라고 본다. 셈어파의 [[아카드어]]가 공용어로 쓰였지만 행정언어로는 여전히 기존의 [[수메르어]]가 쓰였고 거대한 댐과 저수지들을 짓기도 했다. 아카드 제국은 [[나람신]] 대왕의 재위기에 그 국력의 절정을 찍었고 이때는 왕이 곧 신이라고 부를 정도로 강대했다. 하지만 나람신 대왕 사후 아카드도 몰락하기 시작했으며 [[자그로스 산맥]]에서 발원한 유목민족 [[구티 왕조|구티족]]이 쳐들어와 제국을 헤집어놓았고 결국 아카드는 180여 년만인 기원전 2154년 경에 멸망한다. 구티족이 아카드를 꺾고 메소포타미아 남부를 차지해 [[구티 왕조]]를 세웠다지만 태생이 유목민인 탓에 행정 능력이 전무했고 메소포타미아 전역을 확고히 다스리는 건 불가능했다. 게다가 기록도 많이 남기지 않아서 구티족에 대한 연구는 지지부진한 상태다. 구티족들에게 피해를 입은 기존 메소포타미아인들은 이들을 야만인 수준으로 묘사했다. 구티족이 남부 지방을 정복했지만 라가쉬 등을 포함한 상당수의 도시국가들은 이들에게 복속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있었다. 결국 구티족의 억압에 지친 메소포타미아인들이 [[우루크]]의 왕 우투헤갈을 중심으로 구티 왕조를 몰아내는데 성공했다. 구티 왕조가 떠나자 수많은 도시국가들이 패권을 거머쥐기 위하여 다시 각축전을 벌이다가, 결국 [[우르]]의 우르남무가 메소포타미아를 통일하고 [[우르 제3왕조]]를 건립하며 수메르인들의 나라가 다시 세워진다. [[우르 제3왕조]]는 수메르인들이 세운 마지막 왕조였다. 메소포타미아를 통합한 우르남무는 [[우르남무 법전]]을 제정하고[* 이 우르남무 법전은 [[함무라비 법전]]보다도 300년이나 앞선 법전으로, '''현존하는 세계 최초의 [[성문법]]'''이다. ] 달의 신 [[난나]]를 기린다는 명목으로 현대까지도 남아있는 [[우르]]의 [[지구라트]]를 건립했다. 우르 제3왕조는 우르남무의 후계자 [[슐기]] 국왕 때 최전성기를 찍었다. 국가를 중앙집권화시키려 노력했으며 행정 절차, 표준 문서, 조세 제도, 국가 달력 등 수많은 것들을 일원화하는 등 다양한 업적들을 남겼던 것. [[엘람]] 왕국을 공격해 쿠틱인슈시나크 왕을 쓰러뜨렸으며 인근 일대를 편입시키기까지도 했다. 하지만 슐기 왕 사후 들어서는 가뭄과 반란 등 여러 요인 때문에 우르 제3왕조 역시 쇠퇴했고, 나중에 [[엘람]]인들에게 수도를 점령당하는 등 망하기 직전까지도 갔다. 수메르인들은 엘람인들을 몰아내는 데까지는 성공했지만 다시 지역 패권을 되찾지는 못했다. 수메르인들이 휘청이는 동안 [[셈족]] 계통의 [[아모리인]]들이 세력을 키워갔고, 결국에는 약해진 수메르인들을 죄다 복속시키고 [[고바빌로니아]]를 건국하게 된다. 여기서 빼놓을 수 없는 세력이 바로 메소포타미아 서부 지방의 [[아시리아]]다. 아시리아는 시대에 따라서 고아시리아-중아시리아-신아시리아로 구분하는데, 이때의 아시리아는 고아시리아로 부른다. 고아시리아 시대까지만 해도 아시리아인들은 별 볼일 없는 상인들에 불과했다. 최초의 왕은 푸주르-아슈르 1세라고 알려졌으며 이때 [[우르 제3왕조]]에게서 독립해 떨어져 나온 걸로 추정된다. 그 후에 여러 왕들이 연달아 즉위했지만 이때는 고아시리아가 약소국에 불과했기에 딱히 주목할만한 업적이나 특기를 남기진 못했다. 그나마 일루슈마 왕 시절에 힘을 길러 [[이신(고대 도시국가)|이신]] 같은 메소포타미아 도시들을 공격하고 [[소아시아]]에 식민도시들을 건설했다는 것 정도가 있다. 굳이 고아시리아를 설명하는 이유는 고아시리아가 나중에는 대제국으로 발돋움해 메소포타미아 일대를 통합한 [[고바빌로니아]]와 끝없는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문단 참조. 우르 제3왕조가 멸망한 직후부터 고바빌로니아가 세워질 때까지의 시대를 [[이신-라르사 시대]]라고 부른다. 두 대도시인 이신과 라르사가 서로 끊임없이 대립하면서 으르렁거렸기 때문이다. 자세히 설명하자면, 우르 제3왕조의 마지막 왕 이비-신의 신하 이쉬비-에라는 반역을 일으키고 대도시 이신에서 새 왕조를 세웠다. 이쉬비-에라는 힘을 키워 역으로 우르 제3왕조를 꺾고 일대 패권을 쥐는 데 성공했는데, 혈연적 관계는 없었지만 사실상 우르 제3왕조의 후신을 자처하면서 정통성을 얻으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신은 핵심 대도시인 우르와 우루크, 종교 중심지 니푸르 등을 장악하고 100여 년 동안 메소포타미아를 다스렸다. 그러던 중 라르사의 총독 군구눔이 이신에 반란을 일으켜 떨어져 나갔다. 라르사가 [[페르시아 만]]의 핵심 대도시에 교역 중심지였던 터라 라르사의 반란은 이신에게 치명타였고, 라르사는 계속 이신의 목줄을 죄면서 메소포타미아의 패권을 노렸다. 라르사의 독립으로 기존 패권국 이신이 망해갔다지만 라르사도 특별히 패권국의 지위에 오르지는 못했다. 라르사는 그 최전성기에도 고작 10~15개 정도의 도시국가들 밖에 거느리지 못했는데 기존 패권국들은 보통 수 백여개에 달하는 도시국가를 거느렸던 걸 생각해보면 초라해 보일 정도였다. 이신과 라르사는 서로 제살 깎아먹기 식으로 끝없는 경쟁구도를 펼쳤지만 그 누구도 한쪽을 멸망시키지는 못했다. 그러다가 혜성처럼 등장한 국가가 그 유명한 [[함무라비]] 대왕과 [[고바빌로니아]]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